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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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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슈토쉬 고와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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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1
내공 드립니다~~~~  모헨조 다로 세계 4대문명에서 사용한 문자에 대해서 설명좀 해주세요,
감상평 2
1. 이집트의 상형문자  신성 문자(神聖文字, Hieroglyph)는 고대 이집트의 돌이나 나무에 새긴 (상형) 문자를 지칭하는 낱말로서,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글리피카 그람마타"(Hieroglyphica grammata: "신성하게 새긴 말")의 줄인 말이다. "능력의 말"이라는 뜻의 이집트어 "메두 네테르"(Medu Neter)를 번역한 데서 온 이 용어는 기원전 약 4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신성 문자는 서기의 신인 토트가 발명하여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 전해진다. 더러는 마야 문명·아스테카 문명의 문자 등 기타 상형문자를 지칭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히에로글리프 이외에 두가지 다른 문자들(신관 문자, 민중 문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는 로제타석의 발견과 더불어 19세기 초엽에 프랑스의 이집트학 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되었다.  각 글자들은 각종 동물이나 사물, 신체의 모습을 본뜬 모습을 하고 있다. 글자들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리 글자로, 그 모습과 상관없이 단어의 소리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두 번째는 의미 글자(Determinatives)로, 소리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의 맨 뒤에 붙어 그 단어의 뜻을 결정한다. 세 번째는 소리-의미 글자(Ideograms)인데, 그 자체로 소리와 의미를 모두 가진다. 신성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 위에서 아래의 세 가지 방법으로 기록된다. 문자에 등장하는 사람, 동물, 새의 머리는 언제나 글이 시작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으므로 문자 속의 인물이나 동물들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시작하면 된다. 아래에서 위쪽으로 읽는 법은 없다. 모아쓰기가 이루어지는데 한글처럼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며, 모아쓰기된 글자들은 원래 읽는 방향대로 차례로 읽어가면 된다.왕의 이름은 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를 카르투슈(Cartouche)라고 한다. 이것이 로제타 돌을 해석하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2. 중국 황하 갑골문자 거북의 등껍질[龜甲]이나 짐승의 어깨뼈[肩甲骨]에 새겨져 있어 귀판문(龜版文), 귀갑문자(龜甲文字), 귀갑수골문자(龜甲獸骨文字)라고 한다. 점을 치는 일[占卜]에 사용되었다고 해서 복사(卜辭), 정복문자(貞卜文字), 갑골복사(甲骨卜辭)라고도 불리며, 칼로 새겨 놓았기 때문에 계문(契文), 은계문자(殷契文字)라고도 부른다. 중국의 역사학자 류마오더[陸懋德]가 192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갑골문(甲骨文)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로 갑골문자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갑골문자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청(?) 나라 말기의 금석학자 왕의영(王懿榮)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99년 학질(?疾, 말라리아)을 치료하기 위해 약재로 사들인 용골(짐승의 뼈나 거북의 껍질)에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유악(劉?)과 함께 연구했다. 그는 이 용골들이 고대 상(商) 나라 때에 점을 치는 일에 사용되던 것이며, 여기에 새겨져 있는 문자가 중국의 고대 문자임을 밝혀냈다. 왕의영은 갑골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짧은 기간에 1,500여 조각의 유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1년 뒤 서구 열강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에는 유악이 연구를 이어갔다. 유악은1903년에 그 때까지 수집한 갑골문의 도록(圖錄)을 <철운장귀(鐵雲?龜)>라는 책으로 출간하였고, 이때부터 갑골문자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뒤 수많은 학자들이 갑골의 수집과 갑골문자의 연구에 참여했다. 1928년부터 중국 중앙연구원(中央?究院)이 안양[安陽]의 샤오툰춘[小屯村] 일대를 발굴하여 상(商)의 도읍지인 은허(殷墟)를 발견했다. 그리고 1937년까지 15차에 걸친 발굴로 25,000점에 이르는 갑골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로써 과거 전설로 여겨지던 상 왕조의 존재가 입증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일본학자들도 은허를 발굴해 다수의 갑골과 유물을 발견했다. 종전 이후에는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이 허난성[河南省]과 허베이성[河北省] 일대에서 상(商) 시대의 갑골을, 산시성[山西省]과  산시성[陝西省]山], 베이징[北京]에서는 주(周) 시대의 갑골을 발견하였다. 지금까지 모두 15만 점 이상의 갑골 조각이 발굴되었으며, 약 4,500자 정도의 갑골문자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3분의 1 정도만이 해독되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갑골문은 상(商)의 17대 임금인 반경(盤庚)부터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까지 약 250년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제사(祭祀)ㆍ군사(軍事)ㆍ천상(天象)ㆍ전렵(田獵)ㆍ농경(農耕)ㆍ임금의 행행(行幸)과 안부(安否)에 관한 것이 많으며, 상(商)의 정치ㆍ사회ㆍ경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인은 설형문자(쐐기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뾰족한 갈대 펜으로 글씨를 새기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자인데 표음 문자로 발전했다. 페니키아 인들이 사용한 문자는 오늘날 알파벳의 시조가 되었다. 쐐기문자(cuneiform) 또는 설형문자는 수메르인들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용했던 상형문자로, 현재 알려진 것 중 가장 최초의 문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형 문자적인 요소는 줄어들고 점점 추상화되었다.쐐기문자는 점토판에 썼으며, 철필(스타일러스)라고 부르는 갈대 가지로 만들었다. 철필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썼다.수메르 문자는 아카디아어, 엘라마이트어, 히타이트어(그리고 루위아어), 후리아(우랄어)에도 쓰였으며, 고대 페르시아와 우가리트 문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4. 인더스문명 인더스 문명 [ Indus Civilization ]인도의 고대문명. 최초에 발견된 유적이름을 따서 하라파 문화라고도 부른다. 인더스 강 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하고 북은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인 네팔로부터 남은 인도의 카티아왈 반도 내지 칸베이 만 연안까지, 동은 델리에 가까운 아랑기르불에서, 서는 이란 국경에 가까운 마크란 해안의 스트카겐들까지 동서 160km, 남북 100km의 광대한 지역에 B.C. 2500~B.C. 1500년까지 약 1000년간 계속되었다. 이미 문자와 청동의 주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모헨조 다로와 하라파를 주된 도시로 하고 현재 코트 디지, 찬푸 다로, 로탈, 카리방강 등의 대소 백수십의 도시와 촌락에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균질적인 문화를 가지며, 2대도시를 살펴보면 어느 것이나 하천유역에 위치하고 정연한 도시계획 아래 건설되어 서방에는 성새가 있고 동방에 시가지가 펼쳐진다. 미술품으로는 여러가지 조각이 있다. 모헨조 다로에서 출토된 수개의 석회암 남자 흉상은, 3엽무늬의 옷을 입은 사제의 상과 남자의 좌상 등 공통된 체격을 나타내나 하라파에서 출토된 2개의 석회암 토르소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장은 인더스 문명에서 제일 특색있는 것이나 그 속에 들어있는 상형문자는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도양(圓樣)에는 소, 일각수(一角獸), 코끼리, 범, 악어 공상적인 괴수, 나무의 신, 또 길가메시 신, 시바 신에 유사한 상도 있고 훌륭하게 표현된 것이 많다. 인더스 문명의 경제적 기반은 보리농사를 주로 하는 농경이고 목화, 대추야자, 참깨, 완두콩을 재배하였고 가축을 사육하였으며 도량형이 통일되어 십진법과 십육진법이 병용되었다. 인더스문명은 B.C. 1500년경 돌연 붕괴하였다. 그것은 아리아 인의 침입 및 번영에 따른 나무의 벌채가 물 기근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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